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하일 스코로두모프 (문단 편집) === 제2차 세계 대전 === 1941년, 추축국에 점령당한 유고슬라비아에서 [[요시프 브로즈 티토]]를 위시한 공산주의 세력의 파르티잔 활동이 늘어나는 상황을 목도하게 된다. 때문에 반공주의의 입장 및 이주해온 러시아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세르비아 군정청]]에 민병대를 구성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거절당하였다. 세르비아의 반공주의 정치인 및 [[나치 독일]]에 군사조직을 창설할 것을 제안하였으나 약간의 지원만 하였을 뿐 사실상 거절되었다. 스코로두모프는 세르비아의 군정장관인 [[https://en.m.wikipedia.org/wiki/Heinrich_Danckelmann|하인리히 단켈만]] 항공대장과 그 참모장인 에리히 케비치 대령을 끈질기게 설득하였으며, 결국 본인을 사령관으로 하는 러시아 보호군을 조직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독일 국방군]] 아래의 조직으로 형성되었음에도 최고 지휘관만 독일의 명령체계 및 계급을 받고, 그 외 러시아 보호군 소속 러시아인들은 자체적인 러시아식의 계급 및 명령체계를 갖출 것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독일은 애초에 백계 러시아인들조차 불신하고 있던 차에 스코로두모프의 다소 독립적인 행태의 군사조직의 운용을 용납할 수 없었다. 때문에 러시아인으로 구성된 러시아 보호군을 창설한지 3일만에 독일군의 강압에 의해 사령관에서 물러나야 했으며, 참모장이었던 러시아 제국군 출신의 [[보리스 시테이폰]]으로 교체된다. 이후 [[게슈타포]]에 의해서 체포되었으며, 독립국을 만들어 수장이 되려 하였다는 누명이 씌워졌다. [[알프레트 로젠베르크]]는 교수형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였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었으나 에리히 케비치 대령과의 관계 덕분에 3주 정도 체포되는 것으로 무마되었다. 지속적으로 게슈타포에 의해서 감시받아 왔으며, 공산주의에 대한 항전을 선전하는 문서에 서명을 강요받았다. 스코로두모프는 독일의 남동유럽에서의 파르티잔 진압과 그 선전 내용에는 비판적이었음에도 백계 러시아인들의 안전을 위해서 독일군에 동조하였다. 다른 백계 러시아인 장교들이 그렇듯, 동유럽에서의 상황을 [[러시아 내전]]의 연장선으로 인식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